끊이지 않는 첨단기술 유출, ‘처벌 허술’ 대책 마련 시급

2018.11.30 10: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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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국내 공장자동화 설비 전문업체 톱텍(대표 이재환)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유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자, 기술 보호에 둔감한 업계 풍토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첨단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적으로 역량을 응집해 핵심 산업 기술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수원지검 인권·첨단범죄전담부(김욱준 부장검사)는 톱텍 방인복 사장과 협력업체 부사장 등 총 11명을 기소했다. 수출용으로 위장 설립한 협력업체를 통해 삼성디스플레이 기술을 중국 패널업체로 넘기려 한 혐의다. 중국 최대 패널업체인 BOE도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출로 삼성디스플레이가 3년간 입을 피해액 규모는 매출 6조5000억원, 영업이익 1조원 가량으로 추산됐다.

일각에선 이 같은 기술 유출이 업계 내에선 이미 비일비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소재·장비·부품업체들은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과 기술이나 장비를 공동 개발해 법률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술 유출 가능성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는 증언이다. 특히 올해 ‘삼성디스플레이 OLED 투자 축소’ 등 영향으로 국내 디스플레이 소재·장비·부품업체들이 살길을 찾아 투자가 활발한 중국으로 향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 실제 기술 유출을 시도한 정황도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1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연구원 2명을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대형 OLED 증착 기술을 중국업체로 넘기려 한 혐의다. 또한 최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OLED 분야 대기업 협력업체 핵심연구원 5명이 국가 핵심기술 등 산업기술 5000여 건을 중국 경쟁업체로 빼돌리려던 것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찰·검찰, 국정원은 국내 첨단산업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행위를 최근 들어 더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톱텍 수사도 국정원이 검찰에 제보해 이뤄졌다. 국정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인력 유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와 함께 수개월 전부터 논의를 진행해오고 있다.

다만 첨단산업 보호에 나선 검찰은 ‘인력 부족’·‘업무 과중’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도 기술 유출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 기술 보호 관련 법률로 기술 유출은 적발할 수 있어도, 기술력을 보유한 핵심인력의 해외 업체 이직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결부돼 무작정 봉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처벌 허술, 왜? = 문제는 첨단기술 유출을 적발해도 처벌이 허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지정된 기술이라도 재판이 길어지면서 미온한 처벌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 유지가 허술해지면서 영업기밀 요건인 비공지성(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음)·비밀관리성(회사가 합리적 노력으로 비밀을 유지함) 등이 희미해지거나,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강력 처벌 의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을 빼돌렸어도 ‘부정한 이익을 얻으려 했거나 피해기업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 없었다는 판결이 내려져 무죄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12년 검찰은 이스라엘 검사장비 기업 오보텍의 한국지사 직원들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現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TV용 OLED 패널 기술을 유출했다며 구속기소했으나, 올해 대법원은 거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오보텍코리아 과장 안씨(42)만 일부 혐의가 인정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을 뿐, 함께 기소된 직원 5명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재판부가 부정한 목적이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술이 유출됐어도 부정한 목적이 없는 경우 범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한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점은 문제로 거론된다. 증거가 부족한 경우 부정한 의도가 묻힐 수 있어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바로서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가 핵심기술을 유출해도 재판 과정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기술유출사범 재판 103건 중 집행유예와 벌금형에 그친 경우는 92건(89.3%)에 달한다. 집행유예 56건(54.4%), 벌금형 36건(34.9%), 무죄 7건(6.8%), 선고유예 1건(1.0%) 순이다.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3건(2.9%)에 불과했다.

◆ 中 유출, 최근 더 심해져 = 최근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해외로 유출된 국내 첨단 기술 40건 중, 중국 유출 비중은 70%(28건)에 달했다. 중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가전 등 부문에서도 한국 기술을 빼내기 위해 혈안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인력 빼내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 BOE, CSOT, 티안마 등 패널업체는 LCD 분야에서 이미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가운데, 현재 OLED 투자에 집중하며 국내 대기업 출신 인력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푸젠진화반도체, 이노트론, YMTC 등 D램·낸드 기업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한편에선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중국업체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정부 보조금’·‘질 낮은 제품도 흡수하는 내수시장’·‘타국 핵심인력 유치’ 등으로 예상보다 빠른 성장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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